9월의 시작, 개학 그리고 이민 33년차의 다짐
코넬에서 구조공학자로, MBA에서 독립 컨설턴트로 그리고 지금, 나답게 살기로 마음먹은 순간들
안녕하세요. 한 주 잘 보내셨나요?
드디어 개학입니다.
Yay…? (기뻐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요.)
벌써 9월이라니, 믿기지 않아요.
올해도 어느새 3분의 2가 지나갔고, 제게는 또 하나의 숫자가 더해졌습니다.
올해로 밴쿠버에 산 지 정확히 30년이 됐어요.
그 전에 빅토리아에서 2년을 살았으니, 캐나다 포함 해외 생활이 33년차에 접어들었죠.








1993년 9월 1일,
32년 전 어제, 밴쿠버에서 랜딩을 하고 바로 빅토리아로 가는 비행기를 탔죠.
그때의 10대 소녀가 지금은… 방황하는 40대 작가 워너비가 되어 이렇게 뉴스레터를 쓰고 있네요.
해외에서 살아온 시간이 이제 한국에서 살았던 시간의 거의 두 배가 되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다가옵니다.
세월이 참… 그래요. 제가 나이를 좀 먹긴 했어야죠. 😅
코넬에서의 시간
지난번에는 코넬 이야기에서 잠시 멈췄던 것 같아요.
오늘은 그 다음 이야기를 이어가보려고 해요.
저는 1999년에 코넬에 입학했고, 보통 2년 안에 끝내는 연구 석사 과정을 거의 3년 가까이 끌어 2002년 5월에 겨우 졸업했습니다.
대학원 생활을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일과 일상의 경계가 완전히 무너져요. 다들 그러신 건 아니었지만 저는 그랬습니다. 새벽같이 연구실에 출근해 밤늦게까지 남아 있고, 자다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연구실로 뛰어가곤 했어요.
연구실에서 울기도 많이 울었고, 별별 일을 다 겪었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몰입하고 있는 제 모습이 그때는 ‘능력 없어 보인다’고 느껴졌어요. 연구를 ‘잘’하는 게 아니라, 연구에 ‘잡아먹히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던 거죠.
연구에 지친 끝, 선택한 탈출
주변엔 출퇴근 시간을 지키며 루틴을 갖춘 석·박사생들도 있었어요. 늘 부러웠습니다. “나도 저렇게 여유롭게 연구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결국 저는 기다리다 지쳐 박사 과정을 포기했고, 석사만 마치고 졸업했어요.
지금 대학원에 계신 분들께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워라밸 없는 대학원 생활, 절대 당연한 게 아닙니다.
연구가 아무리 중요해도, 삶이 무너진 채 이어가는 연구는 오래 가지 못해요.
연구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요.
저는 그걸 몰랐어요.
자신이 무너지지 않아야 연구도 오래할 수 있다는 걸요.
그렇게 박사 진학은 접었고, 석사도 겨우 마친 저는 졸업식도 생략했어요. 그냥 탈출하고 싶었습니다.
이타카, 부들부들.
업스테이트 뉴욕, 부들부들.
미국, 부들부들.
번아웃과 귀국, 그리고 첫 직장
그렇게 저는 ‘명분 있는 가출’을 하듯 빅토리아로 돌아왔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구직 전선에 섰습니다.
석사 과정에서 심하게 번아웃을 겪은 뒤라 몸과 마음 모두 지쳐 있었어요.
불규칙한 생활 탓에 체중도 많이 늘었고, 정신적으로도 힘들었죠.
첫 직장을 구하는 데는 2~3개월 정도 걸렸어요.
미국 대도시 전역에 이력서를 뿌리고, 전화 인터뷰도 하고, 미국에 직접 가서 면접도 보고, 오퍼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밴쿠버에 남기로 결정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많은 갈림길이 있었는데, 그 모든 선택이 결국 저를 다시 밴쿠버로 이끌었네요.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일을 시작하면서 삶이 조금 재미있어졌어요.
석사를 너무 치열하게 해서인지, 그 이후의 일들이 상대적으로 다 쉬워 보였거든요.
밴쿠버에 남기로 한 이유
일을 시작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습니다.
“내가 7년 동안 뼈 빠지게 공부해서 해낸 이 일,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일까?”
정말 몇 개월도 안 걸렸어요.
(이 얘기는 아마 뉴스레터 초기에 살짝 했던 것 같은데, 새로 오신 분들은 처음 들으실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때 밴쿠버에 남기로 한 건 정말 잘한 선택이었어요.
미국에서 계속 살고 싶은 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없어졌고요.
밴쿠버 안팎으로 다른 도시에서 일할 기회도 많았지만, 결국 남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지금의 남편을 밴쿠버에서 만났기 때문이에요.
이유 하나만으로도 이 선택이 얼마나 결정적이었는지 알 수 있었죠.
전공과 성향의 불일치
저는 원래 ‘빅픽처’를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큰 그림을 그리고 방향을 잡는 걸 좋아하는데, 구조공학은 그와 정반대였죠.
도시계획이 먼저 세워지고, 도로와 인프라가 다 정해지고 나면 그제서야 “여기 교량 하나 넣읍시다”가 되는 구조였어요.
그때가 되면 구조공학자의 역할은 제한된 조건 안에서 최적의 해법을 찾는 일이죠. 예산, 정치, 이해관계자, 도시계획 등 모든 게 정리된 후에야 우리 차례가 오고요.
누군가는 그걸 ‘스타는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이라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게 달갑지 않았어요. 이미 짜인 판에 들어가 ‘맞춰서 설계’하는 일이 저에겐 답답하게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MBA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경제적 의사결정이 시작되는 초기 단계부터 참여해보고 싶었고, 도시계획이나 정책 쪽을 공부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었어요.
커리어 2막, 그리고 삶의 전환점들
그렇게 회사에 8년을 다녔고, MBA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독립해서 일하기 시작한 지 이제 16년이 넘었습니다.
중간에 다 내려놓고 풀타임으로 학교에 다시 다녀오기도 했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키우고…
뭐,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는 이야기죠.
JAEK Company Inc.의 1막, 2막, 그리고 지금 쓰고 있는 3막까지—
언제나 조금은 방황하면서, 조금은 의도적으로, 그렇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방황의 끝자락에서 다시 정리한 마음들
그러고 보니, 최근 3년간의 방황 끝에 올해 생일을 기점으로 많은 것들을 조금씩 정리하게 됐어요.
그간 붙잡고 있던 고민들, 흔들리는 마음들, 이제는 좀 내려놓자—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나름대로 다짐을 해봤습니다. 소박하지만, 제겐 꽤 중요한 결심들이었어요.
✨ Kay의 최근 다짐 3가지
1. 남이 뭐라고 하든, 좀 쌩까기로 한 거
예전에는 “나는 남 눈치 안 봐”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안 본 척만 했던 것 같아요. 이제는 진짜, 뭘 하든 말하는 사람은 항상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걸 감안하고서라도 내 선택이 괜찮다고 느껴지면 그냥 쌩— 하기로 했어요.
그게 저를 지키는 방식이니까요.
2. 하고 싶은 거, 열심히 하기로 한 거
하고 싶은 게 참 많아요.
글쓰기, 영상 만들기, 코칭, 공부, 프로젝트… 전에는 이 욕심이 과한 건 아닐까 고민했는데,
지금은 그냥 인정하기로 했어요. 결과가 어떻든 간에 해보는 게 중요한 시점인 것 같아요.
3. 나와 나의 건강을 더 세게 챙기기로 한 거
몸이 무너지면 마음도 무너진다는 걸 요즘 뼈저리게 느끼고 있어요.
예전에는 버티는 게 미덕인 줄 알았는데, 이젠 아예 루틴 자체를 바꾸려고 하고 있어요.
산책하고, 좋은 거 먹고, 컨디션 안 좋아지기 전에 멈추기.
건강은 일보다 먼저 챙겨야 한다는 걸 50이 되기 전에 뼈저리게 느끼네요.
💪 요즘 내가 자랑스러운 5가지
이참에, 방황 속에서도 지켜낸 것들과 새롭게 얻은 것들도 돌아보게 됐어요.
그래서 정리해본 요즘의 자랑스러운 점 다섯 가지:
남이 뭐라든, 예전보다 훨씬 덜 흔들리는 마음
하고 싶은 걸 망설이지 않고 시도하는 용기
생각보다 절친한 친구들이 많다는 사실
예전보다 훨씬 줄어든 물욕
나와 나의 건강을 진심으로 챙기려는 태도
1, 2, 5 는 위에서 결심한 거랑 겹치죠. ㅋㅋㅋ
박력 있게, 그러나 나답게
그래서 요즘은요,
“그걸 굳이 왜 해?”
“그게 뭐 도움이 되는데?”
이런 시선에도 그냥 웃고 말아요.
원래도 크게 신경 쓰는 편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진짜, 더 안 쓰기로 했어요.
내 삶의 방향은 내가 정하는 거니까요.
조금은 우아하게,
조금은 박력 있게,
그러나 언제나 나답게.
그럼 이번 주도,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만의 기준으로
꿋꿋하게 살아내는 한 주 되시길 바랍니다.
안뇽!
케이윤 드림



케이윤님 글은 그냥 술술 읽혀요. 공감되는 부분도 있고, 케이윤님이 걸어온 지난 이야기 듣는것도 재밌고 또 읽으면서 몇개씩 배우기도 하고. 좋은 글 감사해요!
7년 동안 열정을 쏟았던 일에서 방향을 전환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 용기와 결단인데! 멋지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