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도 역시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참으로 많이 고민했어요. 사실 매주 어떤 주제로 글을 쓸지 생각하는 게 즐겁기도 하지만, 어려운 문제가 돼버렸어요. 머릿속에 잡다한 생각들이 많이 교차하고, 정보를 과다하게 소비하다 보니, 내용을 정리하는 게 쉽지 않은 걸 느끼고 있어요. 아무래도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걸까 싶기도 합니다.
댐군(남편의 온라인상 닉넴입니다. 본인은 몰라요.)은 나이에 대해 푸념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냥 저도 겉으로 투덜거릴 때만 하는 얘기죠. 사실 전 제 나이가 좋아요.
어쨌든, 오늘은 제 방황의 시작점과 그로부터 그 방황이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해요. 글을 쓰다 보니 쉽게 얘기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고, 너무 길어져서 이번 주에는 마무리가 좀 어려울 것 같네요. 게다가 주제도 주제이니만큼 너무나 많은 과거의 제 모습을 회상하며 글을 쓰는 것이, 참 쑥스러운 감이 없지 않아요. 하지만 지금은 아직 구독자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덜 부끄럽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게 바로 정신 승리죠. ㅋㅋㅋ 😂)
👻0. TLDR (Too Long; Didn’t Read)
너무 제 개인적인 얘기가 많기 때문에 재미없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TLDR버전으로 요약해 드리겠습니다.
책 읽고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던 소심한 아이가
태권도를 배우면서 자신감을 좀 얻을만하니
캐나다로 이민가서 말을 못 하게 되자 다시 자신감을 잃었는데
그나마 수학·과학을 좀 해서 공대로 진학했지만
공대를 다니면서 본격적인 방황을 시작했다.
디테일을 원하시면, 계속 읽어주세요!
아니면 다음 주에 또 뵈어요!
👣1. 태어나서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
저는 꽤 어렸을 때부터 많은 기억이 나는 편이에요. 어떤 건 무의식적으로 만들어진 걸 제가 레알이라고 믿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어떤 건 정말 기억하는 것일 수도 있겠죠.
어렸을 때 꽤 똘똘한 아이였어요. 글도 일찍 읽고, 노래도 쉽게 외워 부르고, 그림도 또래에 비해 잘 그리며, 주로 앉아서 놀기를 좋아하는 아이였어요.
반대로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건 별로 안 좋아했어요. 그네 타고 미끄럼 타고 흙… 흙 만지는 걸 정말 싫어했어요. 유치원 나이에는 동네 친구들이랑 소꿉놀이를 많이 했던 거 같아요. 뛰어노는 건 어렸을 때부터 별로 제 취향이 아니었어요. 유치원은 안 다닌 대신 피아노, 미술, 주산, 웅변학원을 다녔던 거 같아요.
가장 좋아하는 건 책 읽고 그림 그리는 거였어요. 이모나 엄마, 아니면 육촌 언니같이 저보다 잘 그리는 주위 사람들이 그림 그리는 걸 보길 제일 좋아했어요.
만 네 살 때, 처음으로 동네 미술 학원에 다녔어요. 선생님이 재능이 있다 하시며 엄마한테 미술을 계속 시키라고 하셨어요. 그 선생님의 모습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당시 선생님을 좋아했던 마음은 생각나요. 그때부터 미술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 되었어요.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에 다닐 때, 저는 엄청 소심한 아이였어요. 발표도 잘 못 하고 친구들과 대화하는 것도 서툴렀죠. 얼마나 존재감이 없었는지, 2학년 때 한 번 결석을 했는데, 선생님이 제 결석한 걸 모르셨더라고요. 물론 80년대에는 한 반에 학생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게다가 그때 제가 반장의 짝이었는데 말이에요…
너무 소극적이고, 말도 못 하고 자신감이 없어 해서 3학년 때부터 태권도를 배웠어요. 정말 몸치였는데도 불구하고 품새는 참 잘했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 칭찬도 많이 듣고, 상도 받고, 기합 지르면서 발성도 많이 좋아지고 자신감도 생겼어요.
그때부터 이민 오기 전인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반장, 부반장, 무슨 임원, 단장 등 리더쉽 롤을 많이 맡았던 거 같아요.
🍁2. 캐나다 이민 생활의 시작
고2 9월에, 끌려오다시피 캐나다로 이민을 왔어요. 오자마자 바로 집 근처 공립학교에서 11학년부터 시작했어요. 주변의 몇몇 친구들처럼 한 학년을 낮춰서 시작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이 고민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러나 부모님과 상의해서 만약 11/12학년을 해도 대학 진학에 필요한 성적이 충분하지 않다면, 차라리 12학년을 다시 다니며 성적을 만들어 내는 쪽으로 계획을 세웠죠.
한국에서와 달리, 의사소통이 편치 않게 되니, 자신감을 잃었고, 다시 조용한 학생이 되었어요. 근데 제가 한국에서 공부 좀 잘하는 이과학생이었거든요. 당연히(?) 캐나다에서 수학, 물리, 화학+미술에서 같은 반 친구들보다 확실히 눈에 띄게 좋은 성적을 받게 됐어요. 다니는 학교에는 한국 학생들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 말은 서툴지만, 수학과 물리를 잘하는 동양계 학생이 전학왔다는 사실에 아시안(대부분 중국계) 학생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어요. 그렇게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죠. 특히, 어렸을 때부터 공부 잘하는 걸로 동네에서 유명했던 한 캐나디언 학생과 자주 비교됐어요. 그때 학교 분위기가 약간, 그 친구와 맞짱뜰 만한 아시안 학생이 나타난 걸 환영하는, 그런 느낌이 있었어요.
그다음 해 6월, 11학년 마치고 방학하기 전, 어느 날 화학 시간에 수업을 듣고 있는데, 카운셀러 선생님이 저를 찾아오셨더라고요. 첨에는 너무 놀랐죠. 뭘 잘못해서 선생님께 불려 가는 스타일이 아닌데 부르셔서. 짧지만 잘 안되는 영어로 이해한 결과, 매년 열리는 시상식에 부모님을 초대하려고 전화를 했지만, 통화가 안 됐다며 부모님과 시상식에 참석하라고 하시더군요. 그때는 저도 사춘기였고, 억지로 캐나다로 이민을 와서 마음은 혼란스럽고 부모님과 (특히 아빠와) 문제를 겪고 있던 시기여서, 부모님께 말씀드리기 꺼려졌어요.
하지만 말씀드렸고, 같이 참석하게 되었는데, 참 잘한 일이었어요. 그날 이런저런 상을 7개나 받았거든요. 앞에 얘기한, 그 공부 잘하는 친구와 함께 공동 1등으로 11학년 마치게 되어서, 11학년 아카데믹 트로피에 제 이름을 새기게 되었어요. 아마도 지금 그 학교에 가면 제 이름이 새겨진 트로피가 아직 있을 거에요. 그날은 처음으로 부모님께서 저를 자랑스러워하신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전까지는 웬만큼 성적이 잘 나와도 크게 기뻐하신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그날은 정말 특별했던 거 같아요. 뭔가 아주 느리지만, 그래도 저 자신의 자아를 찾아간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3. 대학진학에 대한 고민
12학년이 되면서, 여전히 말은 서툴지만, 공부 좀 하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공부 잘 하는 아이라는 인지도가 생겼어요.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그렇고요. 11학년을 마치고 수학 선생님은 몇몇 대학의 수학과를 추천해 주셨고, 지원도 안 한 학교들에서 장학금을 줄 테니 우리 학교를 고려해 보라는 그런 편지들을 받았어요. 반면, 미술 선생님은 미술을 계속 해야 한다고 그만두면 너무 아깝다며 미술 분야로의 진로를 권유하셨어요. 종종 디자인과에 가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사실, 미대 진학은 초등학교 이후로는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거 같아요.
한국에서 이과를 선택한 것은 아마도 공대를 고려한 결정이었죠. 건축공학이 제 일 순위였고, 때때로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어요.
캐나다에서 의사소통이 쉽지 않은 고등학생으로 입시 준비를 하면서, 수학과 물리화학을 잘하니, 공대를 선택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했어요. 미래가 불안한 느낌이 만연한 가운데에, 수학과 과학을 잘하는 장점을 버리고, 저의 능력치가 확실하지 않은 상태로 디자인 스쿨 진학을 생각하는 건 너무 큰 위험부담이 있었어요. 물론 이를 위해 충분한 신념과 열정이 필요한데, 그 당시에는 그만큼 강한 열정과 저 자신에 대한 확신도 없었기 때문이겠죠.
😵💫4. 본격적인 방황의 시작
저를 오래 아시는 분들은 제가 어떤 공부를 하고 오랫동안 어떤 일을 했는지 잘 아실 거에요. 또한, 그 안에서 방황도 했다는 사실도 아실 것이죠.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전 지구환경공학과(구토목과)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어요. 토목 안에서 전공은 구조공학이고요. 원래 건축공학과에 가고 싶었지만, 어쩌다 보니 구조공학을 선택하게 되었네요. 이것도 얘기가 좀 길죠. 학부는 밴쿠버의 UBC에서 받았고, 석사는 미국 뉴욕주 코넬 대학교에서 받았어요.
공과 대학 1학년 때에는 수학, 물리, 화학, 엔지니어링 기초 과목 등이 포함된 다양한 공대 과목을 제너럴 하게 듣게 되죠. 2학년부터는 전기, 화공, 전자, 기계, 토목, 재료 등 다양한 전공으로 나뉘게 되며, 토목 안에서도 교통, 구조, 건설, 수질, 지질공학 등 다양한 분야로 세분되어요.
저는 이 중에서 구조를 선택해서 전공하게 되었어요. 건축공학이랑 젤 비슷하다는 이유도 있고 공부하기 제일 어려운 분야라 약간 ‘난 이렇게 어려 공부를 해낼 수 있는 사람이야!’ 뭐 그런 쓸데없는 자존심도 있었던 거 같아요. 구조공학은 물리와 수학 난이도가 높아서 토목 과목 중에서 많은 학생이 가장 어려워하는 분야거든요. 그래서 구조를 공부하는 학생들은 좀 잘난 척하는 것도 없지 않아 있어요. 웃긴 건 제가 어렸을 때부터 물리와 수학을 잘하는 편이긴 했지만, 그 재능(?)이라는 게 딱 대학 2학년까지만 유효했어요. 대학 3학년이 되면서 수학과 물리가 어렵게 느껴지기 시작했거든요. 사실 그전까지는 ‘다른 사람들은 왜 이걸 이해 못 하지?’ 이런 (재수 없는) 생각을 자주 했었는데… 참 어이없죠. 😂 (그러다 대학원 가서 숫자는 없고 그리스 문자만 나오는 수학을 하면서 포기하게 되었죠. 이 얘기는 다음 주에…) 결국엔 구조 과목들이 평균 성적을 다 깎아 먹었어요. 전공과목인데 말이에요. 잘하지도 못하고 재미도 못 느끼고… 이걸 징조라고 생각하고 좀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했는데 말이에요.
그때 구조를 포기해야 했는데, 오기로 버텼던 것 같아요.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성적이 좋았으니까요.
이제 시작인데 Substack 플랫폼에서 너무 길다네요. 아무래도 적어도 2주는 더 써야 웬만큼 마무리될 거 같아요. 다음 주에 ‘방황의 진화’라는 제목으로 찾아뵙겠습니다.
Weekly Recommendation
이번 주 추천은 뿅뿅 지구오락실(줄여서 지락실)입니다.
너어무 좋아요. 요즘 유일하게 챙겨보는 프로입니다. 1박2일 여자 편? 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이거 만든 나영석 PD가 저랑 동갑이거든요. 근데 멤버들이랑 세대 차이 텐션 차이 나는 게 정말 너무 웃겨요. 좀 기가 빨리긴 하지만요. 멤버 넷이 다 저세상 텐션이거든요.
이영지 님은 언니라고 불러야 할 거 같아요. 정말 영지 언니 아니 영지 딸? 일 수도 있는 나이의 이영지 님 ㅅㅅㅅㅅ… 사… 사랑합니다. ❤️❤️❤️❤️❤️❤️❤️
슈퍼우주 대스타 되세요!
🥰 추천코너 굿~~ 잘 있지? 나도 잘 ^^ 짹 글엔 읽는재미가 있잖아.. 화이링! (가끔씩 긴 글을 여전히 쓰고싶어.. 덕분에 알게됐네. 일단 읽고 있을게)
알면 알수록 매력포텐이 뿜뿜!!!
다음 회가 기다려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