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한 주 잘 지내셨나요?
이번 주엔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한참 고민했어요.
요즘 생각이 좀 많아서. ㅋㅋㅋ
뭔가 계획만 하고 이행을 못 한 게 너무 많아서 좀 제 자신이 짜치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하지만 다음 얘기를 좀 먼저 하고 싶네요.
슬기로운 방황생활을 오랫동안 구독해 주신 분들이라면, 제가 요즘 ‘스레드’라는 SNS에서 글을 쓰고 있다는 걸 아실 텐데요. 며칠 전 그곳에서 정말 믿기 힘든 사건 하나를 접하게 되었어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나눠보려고 해요.
🕵️♀️ ‘임상심리학 박사’ 김민지 사건
김민지라는 이름의 여성이 있었어요. 스스로를 임상심리학 박사라고 소개했고, 하버드 학사에 UCLA 박사, 캘리포니아주의 임상심리사 면허 보유자라고 했죠.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있었고, 인스타그램에도 활발히 활동 중이었고요. 심지어 올해 초에는 한국의 대표적인 출판사 중 하나인 ‘길벗’에서 책도 출간했어요. 책 표지엔 미국 심리학계의 유명 인사들이 추천사를 쓴 것처럼 되어 있었고요. 올해 초 출간되었는데 반응도 좋고 홍보도 열심히 하셨어요.
그런데 지난주, 그녀가 스레드에 남긴 “어제 뉴욕 포함 전 세계 내담자들과 상담하느라 바뻤다”는 글 한 줄에서 일이 시작됐어요. 어떤 의사 선생님이 “뉴욕 면허가 있나요?”라고 댓글을 달았고, 그 즉시 차단당했다는 이야기가 퍼졌어요. 그때부터 이상하다고 느낀 몇몇 분들이 이력과 활동을 하나씩 확인하기 시작했죠.
놀랍게도, 그 모든 약력이 다 가짜였어요. 한 스레더가 사무실을 찾아갔으나 벌써 간판 떼고 사라진 후였고, 공교롭게도 그날 폐업 신청이 됐더라고요. 원래 엄청난 이력을 바탕으로 거액의 상담료를 받으면서 상담을 해주셨고 소문으로는 김민지 박사님과 상담하려면 웨이팅이 1년이다라는 얘기도 있어서 공익을 위해 같은 스레더 분이 추천사를 썼다고 알려진 교수들에게 직접 메일을 보내보니 “그런 글을 쓴 적 없다”는 답과 함께, 이 교수님은 며칠 전 김민지 씨 본인에게서 “출판 에이전트의 실수로 추천사를 잘 못 인용하게 되었다”는 해명 메일이 왔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졌어요. 처음에는 얼떨떨했지만, 뒤이어 벌어진 일들을 보며 이게 단순한 ‘과장’ 수준의 일이 아니라는 걸 모두가 깨닫게 되었어요.
👻 며칠 만에 사라진 인터넷 흔적
더 충격적이었던 건 그다음이었어요. 불과 이틀 만에 그 사람의 모든 흔적이 온라인에서 사라진 거예요. 유튜브, 인스타그램, 스레드, 개인 홈페이지까지 전부 삭제됐고, 마치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모든 기록이 지워졌어요. 이 시대에 과연 그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완벽하게요. 너무나 빠르고 매끄러운 삭제였기에, 단순히 누군가의 리플리 증후군으로 보기엔 어려운, 훨씬 더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무언가가 느껴졌어요.
사실 저도 예전부터 몇 번 그 사람의 글을 본 적이 있었고, 심지어 인스타그램에서 광고를 본 적도 있었어요. 조금 이상하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제가 잘 모르는 분야였고, “요즘은 한국에서 미국 진로 상담이나 심리 상담을 하는 사람들도 많구나1” 하고 그냥 넘겼죠. 그런데 이번 사건이 불거지고 나서 다시 찾아보려고 했더니, 정말 모든 게 싹 지워져 있었어요. 이 시대에 이렇게까지 흔적 없이 사라질 수 있다는걸, 저는 이번에 처음 봤어요.
🎓 학벌이 뭐길래
이 사건은 단순한 허위 이력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가진 집단적인 욕망과 불안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라고 생각해요. 더 나아 보이고 싶은 욕망, 더 인정받고 싶은 불안. 누구나 마음 한편에는 그런 마음이 있어요. 그리고 그 욕망을 가장 빠르게 충족시켜 주는 도구가 바로 학벌, 직함, 자격증, 권위 같은 것들이죠. 그런 타이틀 앞에 사람들의 눈빛은 달라지고, 판단은 쉽게 굳어져요.
그렇기 때문에 이 사건이 더 무서운 건지도 몰라요. 우리는 모두 조금이라도 더 ‘그럴듯해 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고, 타인의 멋져 보이는 서사에 마음이 끌리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이번엔 그 서사의 전제가 모두 거짓이었고, 그 안에서 누군가는 조언을 받고, 위로를 얻고, 나아가 인생의 결정을 내렸을 수도 있다는 점이 정말 씁쓸했어요.
⚖️ SNS, 드러냄과 보호 사이에서
한편 온라인에서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된 점이 있어요.
바로, SNS에서 글을 쓴다는 건 양날의 검 같다는 것이죠.
내 이야기를 드러내면 공감과 연결을 얻을 수 있지만, 동시에 그 이야기가 공격의 빌미가 될 수도 있죠. 이번 사건을 보며 그런 생각이 더 깊어졌어요.
그 사람이 SNS를 활발히 하지 않았다면, 그 과거가 이렇게 빨리 밝혀지진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요. 물론 그랬다면 피해자가 계속 양산됐겠죠. 그런 면에서는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우리는 스스로를 드러내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보호받고 싶어 하는 모순된 존재 같아요.
그래서 저도 글을 쓸 때마다 망설이게 돼요.
“이걸 지금 써도 괜찮을까?”
“나중에 내가 후회할 내용은 아닐까?”
“누군가에게 오해를 살 만한 표현은 아닐까?”
그럼에도 계속 쓰는 이유는,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솔직해지고 싶기 때문이에요. 진심으로 쓴 글은, 언젠가 다시 마주했을 때도 내가 방어할 수 있으리란 믿음이 있으니까요.
🧩 이어지는 의혹, 더 깊은 충격
그러던 중, 몇몇 스레더들이 조사를 계속하면서 2018년쯤엔 요가를 가르치던 사람이 어느 순간 임상심리학 박사로 바뀌고, 이후엔 하버드, UCLA의 이름이 하나둘 붙기 시작했다는 흔적들을 찾아냈어요.
즉흥적인 사기가 아니라, 수년에 걸쳐 콸리피케이션이 하나씩 쌓이며 설계된 장기 프로젝트였던 거죠.
김민지 씨의 남편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오기 시작했어요. 유명한 피트니스 인플루언서라고 알려진 분인데 이분도 관여됐을 거 같은 정황들이 많이 발견 됐죠. 그리고 오늘 아침, 남편분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부고가 올라왔어요.
어떻게 된 걸까요? 이렇게 빨리 극적으로 전개가 되는 사건은 티비에서도 본 적이 없는 거 같아요. 만약 사실이라면 고인의 죽음은 너무 안타까워요. 만약 사기라면 당당히 심판을 받고 죗값을 치르면 될 일 아닐까요?
또 속상한 일은 이 사건을 파헤친 스레더들에게 그녀의 죽음에 책임을 묻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십 년 가까이 사기를 쳐온 분을 파해친 건 공공의 이익이 아닌가요? 그동안 얼마나 피해 보신 분들이 많을까요?
같은 날에 출판사에서도 입장을 냈더라고요.
“당사도 검증을 소홀히 한 점은 책임이 있지만, 이미 정부나 대학 등에서 강의를 한 이력이 있어 이전 기관들이 검증을 마친 줄 알았다”고 해명했어요.
🎣 이어서 우리는 사기에 얼마나 노출되어 있을까
생각해 보면, 우리는 매일 크고 작은 사기에 노출되어 있어요. 물론 대부분은 의도적으로 우리를 속이려는 대놓고 악의적인 시도라기보다는, 그럴듯한 이미지와 말투, 감정적인 호소에 기대어 신뢰를 얻는 방식이 더 많죠. 요즘처럼 SNS와 유튜브, 뉴스레터, 웹사이트, 광고, 강의 등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시대에는, 겉보기만으로는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어요.
정보는 넘쳐나고, 우리는 그 정보들 속에서 “무엇을 믿을 것인가”를 계속해서 판단해야 하죠. 하지만 실은 대부분의 판단은 감정적으로 이루어지고, 나와 닮은 사람, 내가 되고 싶은 사람, 내 불안과 욕망을 건드리는 메시지를 따르게 되거든요.
“저 사람처럼 살고 싶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같은 생각은, 한편으론 희망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 희망을 노리는 사람들에게 가장 취약한 약점이 되기도 하니까요.
특히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 박사, 코치, 심리상담사, 의사, 작가, 멘토 등의 타이틀을 가진 이들이 등장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권위를 느끼고,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보다는 신뢰부터 하게 되죠.
그런데 그 타이틀이 허위였다면?
그 사람이 실제로 그 전문성을 갖추지 않았는데도 조언을 해왔던 거라면? 그때부터는 단순한 정보의 오류를 넘어서, 실제 피해로 이어질 수 있어요. 때로는 시간, 돈, 에너지를 잃는 정도가 아니라, 감정적 회복이 어려운 상처를 입게 되기도 하고요.
그렇기에 이 사건을 단지 특이한 개인의 일탈로만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어떤 구조 속에 살고 있는지, 왜 이렇게까지 ‘그럴듯한’ 사람을 믿고 싶어 하는지, 그리고 어떤 필터와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살아가야 할지를 계속 고민하게 되니까요.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누구를 신뢰할지에 대해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태도.
그리고 나 자신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는 책임감을 잊지 않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
📉 신뢰를 주는 사람이 된다는 것
사실 요즘 제일 많이 드는 감정은 ‘내가 너무 짜치다’는 거예요. 계획만 세워놓고 실행은 못 한 일들이 하나둘 쌓이다 보니, 뭔가 자꾸 저 자신이 작아지고, 겉보기에만 열심히 하는 것 같고, 속은 비어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어떤 날은,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가만히 들여다보면, 저는 요즘 자꾸 ‘자격’이라는 단어 앞에서 멈춰 서는 것 같아요.
내가 정말 커리어 디자인 워크숍을 열 자격이 있을까?
내가 누군가에게 재정적인 조언을 해도 되는 사람일까?
지금 이 말, 이 글, 과연 ‘자격 있는 사람의 말’일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뭐 하나 시작하기도 전에 자신이 없어져요. ㅎㅎ
자격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 의욕도 뚝 떨어지고요.
그래서 저도 종종 조언을 구해요. 다행히도 저보다 먼저 시작한 분들, 저를 오래 지켜본 분들, 혹은 그냥 저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분들이 있어요. 그분들이 한결같이 해주는 말이 있어요.
“그냥, 너를 믿고 해봐.”
딱 그 한마디요.
그런 말을 들으면 문득 생각하게 돼요.
나 자신을 믿는다는 건 도대체 뭘 믿는 걸까?
내 의도? 내 경험? 내 능력? 지금까지 살아온 내 발자국?
그걸 하나씩 떠올려 보면, 그래도 뭔가 쌓아온 것들이 있긴 하더라고요. 완벽하진 않아도, 멈추지 않고 여기까지 온 시간. 제가 해온 선택들, 쌓아온 고민들, 망설이면서도 꿋꿋하게 해낸 일들.
그렇다면, 이제는 저도 저 자신을 조금 더 믿어줘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다른 사람을 신뢰하듯, 내 안의 어떤 가능성을, 진심을, 경험을 조금 더 믿어보면 어떨까 싶고요.
이 글을 쓰면서도 여전히 고민은 끝나지 않아요.
하지만 고민 끝에 도착하는 문장은 늘 이거예요.
“그래도 해보자.”
혹시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도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우리 함께 조심스럽게, 하지만 확실하게 나 자신을 한 번 믿어봐도 되겠죠?
오늘도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다음 주에는 좀 더 밝은 얘기를 해보도록 해요. 그럼 한 주 잘 보내시고요. 다음 주에 뵈어요.
안뇽!
케이 윤 (쿨짹) 드림
사실 알고 보니 사무실이 한국에 있었어요. 도곡동이랑 제주도라 그랬던 거 같아요.
정말 헐이네요. 부고글도 그렇게 빨리 띄우는 남편도 전 의심이가요. 와이프가 목숨을 잃었다면 뭐 그렇게 SNS에서 부고 공지글 쓸 정신이 있을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 저같으면 와이프에 무슨일이 생기면 가족챙기고 장례준비하고 한다고 SNS는 처다도 안볼거 같은데.. 정말 목숨을 잃은 것인지 아닌지도 의심가고 정말 목숨을 잃었다면 심지어 남편타살까지 의심이 가네요. 도대체 왜 자존감이 없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걸까요. 보이는 것에 집중하는 사람들은 또 왜 이렇게 많은 건지...과서 어유투브에서 부자사칭, 의사 사칭한 사람들도 꽤 많이보고, 허위사실 유포한 사람들도 너무 꽤 봤던지라.. 쩝..정말 에휴...
아우 오늘 글 술술술! 아직 전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지만 오늘 글 완전 재밌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