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얘기는 너무 길고 진부했죠. 반성하고 있습니다. 정말 어렸을 때부터 대학까지의 이야기를 모두 다루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그래도 혹시 아직 읽어 보지 못하신 분들을 위해 여기에 링크를 남겨둡니다.
자, 그럼, 오늘은 대학원 진학부터 이야기해야겠네요.
1. 대학원 고민
대학 3학년을 마쳤는데도 구조공학에 크게 자신이 없었어요. 4학년까지 마쳐도 과연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던 거 같아요. 무조건 어디든 UBC보다는 더 평판이 좋은 곳에서 석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어린 마음에 강했던 거 같아요.
먼저 공학 석사에 대해서 얘기를 좀 해볼게요.
공학 석사에는 두 종류가 있어요. 하나는 필수+원하는 과목만 듣고 논문을 안 쓰고도 졸업할 수 있는 석사, 다른 하나는 수업을 듣고 논문도 써야 하는 석사에요. 북미에서 전자는 주로 1년, 후자는 2년에 걸쳐져요. 저는 후자를 했고, 거의 3년이 걸렸어요. 제 경력에 가장 큰 오점…이라고 생각해요. 뭐든 정해진 타임라인에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스타일인데 남보다 1년이 더 걸린 거니까. 여기서 자존감과 자신감에 많이 상처받은 거 같아요.
이때 알았어야 했는데, 구조공학이 제게 맞지 않았기 때문이란걸요… (이런 게 “sign(징조)”인데 말이죠.)
원래는 1년짜리 과정에 지원했었어요. 우물쭈물하다가 얼리어드미션 날짜가 이른 학교들은 다 놓쳤어요. 결국 코넬, 조지아텍, USC + 스탠포드에 지원했는데 스텐포드는 사실 엄청 지원마감이 빠른 학교 중 하나거든요. 마감일을 놓쳤지만 로망이었던 학교라 그래도 지원서를 넣어봤는데, 역시나 땡! 나머지 학교들은 순차적으로 합격통지를 받았죠. USC, 코넬, 조지아텍 순이었던 거 같아요. 조지아텍은 사실 마감 날짜가 굉장히 늦어서, 제일 늦게 지원했어요. 주로 사립학교를 넣었고 (외국인이 장학금 받기가 쉽다는 뇌피셜이 있었어서 - 사실인지 아닌지는 몰라요.) 그리고 그 당시 토목공학과 랭킹이 좋은 쪽으로 넣었어요. 지금 같았으면 학교 선택, 이렇게 안 했을 거 같아요. 이건 다음 기회가 닿으면 또 얘기를 해보죠.
사실 4학년 때 졸업 프로젝트 하면서, 대학원 지원 준비를 충분히 못 했어요. 뭔가 사회에 나갈 준비는 안 됐고 UBC는 벗어나고 싶고, 그런 조바심만 넘쳤던 거 같아요.
2. 대학원 입학 전 그 여름
어쨌든, 전 비를 피해 캘리포니아에 가고 싶어서, USC에 가려 했는데, 미국에 안식년을 보내고 한국에 가기 전 들르신 사촌 형부님께서, ‘아이비리그, 가야 하지 않겠냐?’ 하시며 강력하게 어필하셔서 ‘아 그런가? 하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코넬 입학을 확정하게 되었어요.
아이비리그 대학이 8개나 있다는 걸 아시나요? 제가 다닌 코넬은 그중 하나에요. 솔직히 8개 대학 중에서 하위권… 이죠. (제 생각에는 하버드, 프린스톤이 탑이고… 그 담에는 과에 따라 좀 다른 느낌.)
코넬에 가기로 결정은 했지만, 그때까지 미국이든 캐나다든 동부 쪽으로 가본 적이 없었어서, 좀 겁나긴 했어요.
UBC 4학년 때 구조과 지도교수님께서 코넬에서 가르친 적이 있으신 분이라 그분에게 레퍼런스를 받았던 것 같아요. 전 별로 가고 싶은 학교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교수님께서 강력하게 추천해 주셔서 코넬에 지원하게 되었어요. 사실 그전에는 들어본 적도 없…
코넬을 가기로 한 직전, 여름에 밴쿠버에서 내진공학(earthquake engineering)컨퍼런스가 있었어요. 거기서 발렌티어를 하게 되었죠. 그곳에서 제 미래의 지도교수를 만나게 되었어요. 콘크리트 구조물을 전공하시는, 당시에는 아주 젊고 아카데미아에서 촉망받는, 하지만 아직 졸업생이 하나도 없으신 조교수님이었어요 (지금은 스탠포드에 계세요).
아, 과거의 내가 그 컨퍼런스를 안 갔어야 했는데… 🤣🤣🤣 거기서 갑자기 연구에 꽂혀서는 왜 주제넘게 논문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지…
그래서 급하게 어드미션 오피스에 연락해서 지원 패키지를 연구 석사로 다시 평가해달라고 요청했고, 그렇게 해서 1년 석사 프로그램 대신 2년 프로그램, 즉 논문을 쓰는 프로그램으로 바꿔서 대학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죠. (딴딴딴… 비극의 시작입니다.)
이때 그냥 1년짜리 과정을 선택했으면, 제 일생에서 가장 큰 후회 중 하나를 피할 수 있었을 텐데… 참 여전히 아쉬움이 남아요.
3. 대학원 생활
지금 생각해도 제일 힘들었던 시간 중 하나라 크게 회상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간단히 얘기해 볼게요.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은 1년 반에도 끝내는 2년짜리 석사 과정을, 저는 거의 3년이나 걸렸어요. 연구에 재능도, 크게 흥미도 없는 데다가, 지도 교수님께서 제 첫 석사 학생이라 scope defining이 잘 안됐던 것 같아요. 너무 넓은 주제를 잡아서 제때 제대로 마무리를 못 한 느낌이랄까요. 같은 연구소 박사 학생들이 할 연구 가능성을 테스트하는 파일롯 연구를 했는데, 실험과 컴퓨터시뮬레이션을 같이하다 보니까 논문은 마무리 다 제 능력이 부족한 탓이긴 하죠. 그래도 제가 마지막에 출판한 논문이 Google Scholar에 의하면 제 지도교수님이 낸 논문 중 제일 citation이 많은 논문이더라고요 (2023년 8월 1일 현재 417번 cite됐네요).
석사 과정 마치면서,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게 될지 모르겠지만, 하나만은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난 절.대.로 박사는 안 할 거라는 생각이요 (누가 시켜준다고 한 것도 아니지만…). 근데 또 사람 일 모르는 게, 나중에 또 생각이 바뀌더라고요. 🤣🤣🤣 작년에 갑자기 박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 얘기는 또 나중에 해보도록 하죠.
4. 월급 받던 시절

석사 때 너무 많은 스트레스로 인해 미국에서 취직하는 것을 포기하고 밴쿠버로 왔어요. 그런데, 밴쿠버를 몇 년 동안 떠나있다 다시 돌아오니, 정말 낯선 도시 같았어요. 친구들도 많이 떠났고, 학교 다니면서 기숙사 살았던 시절과는 달리, 사회에 나와보니 느낌이 너무 달랐어요.
처음에는 회사에 일이 없었어요. 그때 블로깅을 시작했죠. 블로깅은 정말로 사막 속의 오아시스 같았어요. 유일하게, 제 생각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었어요.
시작은 조인스에서 블로깅을 하다가 이글루스로 옮겼어요. 여기저기 글도 좀 썼고, 인터뷰도 좀 하고, 다른 블로거들과 소통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친해져서 지금까지도 연락하고 지내게 된 분들도 많아요.
일은…
처음에는 구조설계를 했어요. 사실은 스카이스크레이퍼(마천루) 디자인이 하고싶었는데, 석사를 교량 내진 쪽으로 공부해서 그 분야로 취직하게 되었어요. 처음부터, 해보니까 "‘바로 이건 아닌데…’ 하는 느낌이 바로 들더라고요. 저는 좀 big picture와 decision making에 영향력을 미치고 싶었는데, 그 길이 너무 멀었어요. 약 20년은 경력을 쌓아야 그 자리에 도달할 거 같았어요. 근데 그때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 공부를 7년이나 하고, 학위를 두 개나 받았으니 ‘이걸로 밥벌이를 해야지, 뭘 하겠어!’ 하는 마음이었어요.
학교에서의 구조공학은 가장 수학적이고 물리적으로 어려운 문제들을 푸는 게 요구되는 분야였는데, 실전에서는 그렇지 않았어요. 설계는 공공의 안전에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분야여서, 당연히 정말 꼼꼼하게 오랜 기간을 훈련하고, 체크에 또 체크… 절대로 위험하게 하거나 직감으로 하면 안 되는 분야였어요.
결국엔 설계는 몇 년 하지 않고, 설계 관리, 시공 관리, 계약 관리를 했다가 정부 대리인으로도 일했다가 제안서도 썼다가 클레임 마무리까지 했어요… 어떤 일을 했는지 궁금하시면 제 링뜨인 프로필을 봐주세요.
Note: You can find me on my LinkedIn and see how I describe my tasks and responsibilities in these projects. Let’s connect if we haven’t already! 😊
5. 프리랜서 시절
2010년 월급쟁이에서 프리랜서로 전향하면서 어느 정도의 자유를 얻었지만, 단점도 많았던 것 같아요.
가장 큰 단점은, 일을 하지 않으면 돈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이었어요. 당연히 그렇죠. 그래서 쉬는 시간이 너무 죄책감이 들었어요. 계속 끊임없이 일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시급 $150 정도로 시작해서 최근에는 $400대로 받았어요. 이 금액에 대해서도 참으로 만감이 교차하죠.
전 프리랜서이지만, 같이 일하는 파트너급 변호사나 매니지먼트 컨설턴트들, 그리고 신입을 막 벗어난 변호사나 컨설턴트들과도 많이 일을 했는데 항상 비교하게 되더라고요. 신입을 막 벗어난 어소시에이츠들은 물론 일을 잘하고 똑똑하지만, 사실 실무는 잘 모르거든요. 현재 논의하는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 어떤 방식으로 해결해야 하는지. 그들이 결국엔 배우긴 하겠지만, charge-out 레이트를 보면 시간당 $350 이렇게 받는데 (물론 그 친구들 회사가 거의 다 떼어가긴 하지만, 이것도 10년 전 rate니 지금은 훨씬 올라갔겠죠.) 클라이언트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비슷하게 값어치로 여겨지는 게 불만이었어요.
반대로 최저임금은 $16.75(현재 BC, Canada 기준) 정도인데, 내가 하는 일이 이런 분들보다 수십 배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기도 했죠.
왜 이런 생각들이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며 피곤하게 했어요. 마음이 평안할 틈이 없었어요.
정신을 차리고, 나 자신을 되돌아보니 뭐랄까… 난 돈과 명예? 그런 걸 크게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시스템 안에서, 웬일인지 불필요한 것들에 너무 집착하고 있었어요. 크게 갖고 싶은 것도 없고, 돈을 크게 필요로 하지 않는데 왜 돈/돈/돈하고 있었을까요?
그래서 본업을 하면서도 사이드 허슬을 해나가면서 결론적으로 내가 좀 더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조금이라도 수입이 되면 바로 갈아타는 것이 최선이지 않을까 하고 계획했어요.
이론적으로는 너무나 완벽한 계획이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웠죠. 물론 이런 마인드로 성공하신 분들도 많지만 저는 못 했어요. (눙물 좀 닦을게요. 😭)
여기까지 썼는데 Substack이 또 제한선에 가깝다고. 이번 주 추천 아이템을 포함하려면 여기에서 마무리해야겠어요. 다음주에는 그래서 현재의 방황 상태, ‘방황ing’로 찾아뵐게요.
Weekly Recommendation
이번 주 추천템은 Thorne Research에서 나온 단백질/비타민/미네랄 보충제…랄까요. 메디클리어 플러스라는 제품인데 백퍼 내돈내산이랍니다. 제가 먹는 걸 잘 챙겨 먹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이걸 하루에 한 잔 꾸준히 챙겨 먹었을 때랑 아닐 때랑 컨디션이 달라요. 혹시 다른 영양제/보충제 기타 등등 추천하실 제품 있으신가요? 이젠 이런 거 잘 챙겨야 할 나이가 되었더라요. 다들 화이팅 합시다!!! (갑자기요? 네네 갑자기요. 😊)
어쩐지 방황마저도 블링블링한 느낌. 다음 이야기도 기다려져요!!!